
1994년 개봉한 영화 '레옹'이 올해로 31년째를 맞이했습니다. 이 숫자가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 봐도 전혀 낡지 않은 영화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킬러 영화라는 장르적 기대만 갖고 앉았다가, 전혀 다른 감정을 안고 극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잔혹하면서도 따뜻한 이 영화,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레옹, 킬러 본능 — 냉혹한 남자가 문을 열어준 이유
레옹이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마약 조직 아지트에 혼자 침입해 조직원 전체를 제거하는 장면에서, 이 남자는 그야말로 완벽한 프로페셔널 킬러(professional killer)입니다. 여기서 프로페셔널 킬러란 단순히 살인을 업으로 삼는 것을 넘어, 감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표적만을 향해 움직이는 훈련된 암살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청부 살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레옹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유 한 잔을 마시고, 화분을 창가에 내놓고,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보며 잠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처음에는 웃음이 났는데, 곧 뭔가 묵직한 것이 올라왔습니다. 이 사람은 뿌리가 없는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화분 하나가 이 남자의 유일한 연대였으니까요.
마틸다가 피를 흘리며 복도를 걷는 모습을 보면서도 레옹은 냉정하게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마틸다의 가족이 마약 단속반 스탠 일당에게 몰살당하고, 마틸다가 레옹의 문을 두드리는 그 장면에서 레옹은 결국 문을 엽니다. 이 선택 하나가 영화 전체의 서사를 바꿉니다. 왜 문을 열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킬러 본능이 아니라 인간 본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레옹이 마틸다에게 느끼는 감정은 영화 심리학에서 말하는 역전이(counter-transference)에 가깝습니다. 역전이란 원래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레옹이 무방비한 마틸다에게서 과거 자신의 취약함을 보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구도가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단순한 보호 본능으로만 보기엔, 레옹의 반응이 너무 흔들립니다.
부녀 서사 — 이 둘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마틸다가 레옹에게 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명확합니다. "킬러가 되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을 죽인 스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옹은 처음에 거부하지만, 결국 마틸다와 함께 거처를 옮기며 킬러 수업을 시작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두 사람이 새 숙소에서 퀴즈 게임을 하며 웃는 장면입니다. 그 어떤 액션 장면보다 그 짧은 일상이 더 강렬하게 박혔습니다. 살인을 업으로 삼는 남자와, 복수를 꿈꾸는 소녀가 만들어내는 이 기묘한 일상. 보면서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영화를 분석할 때 자주 쓰이는 개념이 서사 이중 구조(narrative duality)입니다. 서사 이중 구조란 하나의 이야기 안에 두 개의 상충되는 서사가 동시에 흐르는 구성 방식을 말합니다. '레옹'에서는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서사와, 부녀 관계를 닮은 감정적 서사가 동시에 진행되며 관객을 잡아당깁니다.
마틸다가 레옹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레옹이 보이는 혼란은, 이 이중 구조의 충돌 지점이기도 합니다. 레옹은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킬러로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고, 누군가와 연결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실제로 레옹은 마틸다에게 총을 겨눴다가 거두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그것이 자기 자신을 향한 총구이기도 했다고 봅니다.
레옹이 그렇게까지 마틸다를 신경 쓴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마틸다가 레옹에게 감정이라는 것을 돌려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화분을 들고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떤 가족 영화보다 더 가족처럼 보였습니다.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레옹은 마틸다에게 생존 기술과 숙소,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경험을 줬습니다.
- 마틸다는 레옹에게 감정, 일상,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를 돌려줬습니다.
-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약점이자 힘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결말이 더욱 아팠습니다.
미장센 — 31년이 지나도 세련된 이유
혹시 영화를 보면서 레옹의 선글라스와 모자, 마틸다의 검은 초커와 줄무늬 티셔츠를 유심히 보셨습니까. 저는 이 영화의 의상을 볼 때마다, 이게 정말 1994년 작이 맞나 싶습니다. 지금 거리에 저 둘이 걸어다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세련됨은 우연이 아닙니다. 뤽 베송 감독이 이 영화에 적용한 것은 필름 누아르(film noir) 미학입니다. 필름 누아르란 1940~50년대 미국 범죄 영화에서 발전한 시각적 스타일로, 강한 명암 대비, 도시의 어두운 골목, 도덕적으로 모호한 주인공을 특징으로 합니다. '레옹'은 이 필름 누아르의 문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특히 색채 연출이 눈에 띕니다. 레옹은 대체로 무채색 계열의 의상을 입고, 마틸다는 채도가 낮지만 존재감 있는 색을 입습니다. 이 색채 대비는 두 캐릭터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설명합니다. 레옹은 감정이 지워진 남자, 마틸다는 아직 색이 살아있는 아이. 저는 이 부분을 처음 인식했을 때, 영화가 얼마나 꼼꼼하게 설계됐는지 새삼 놀랐습니다.
뤽 베송 감독의 영상 언어는 영화 연출론에서 말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visual storytelling)의 교과서적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비주얼 스토리텔링이란 대사 없이도 화면 구성, 색채, 카메라 앵글만으로 인물의 심리나 서사를 전달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영화 연출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레옹'을 소리 끄고 다시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결말에서 마틸다가 화분을 학교 정원에 심는 장면은, 이 비주얼 스토리텔링의 정점입니다. 레옹이 평생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살았다면, 마틸다는 그를 땅에 심어줍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모든 것을 말하는 장면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레옹이 원했던 것은 생존이 아니라 안착이었으니까요.
참고로 영화의 서사 구조와 관련된 분석은 국내외 영화학계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장르 혼합과 캐릭터 서사 연구에서 '레옹'은 빈번하게 인용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레옹'은 킬러 영화라는 포장지 안에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묵직한 것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28년이 넘도록 회자되는 이유가 단순히 장르적 완성도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지금이 딱 좋은 시점입니다. 보고 나서 마지막 화분 장면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